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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찬란하게 고고학에서 빛나는 문화유산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소중한 다리입니다. 그 중에서도 고고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들은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인류의 자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에서도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세 곳, 즉 중국의 만리장성, 이탈리아의 트룰리, 그리고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2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중국을 지켜온 거대한 방어 시스템입니다. 진시황부터 명나라 시대까지 여러 왕조에 걸쳐 축조된 만리장성은 험준한 산악 지형을 따라 뻗어 있으며, 그 규모와 건축 기술은 당시 사람들의 지혜와 노력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이탈리아 풀리아 지방의 트룰리는 선사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독특한 석회암 주거지입니다. 접착제 없이 돌의 무게만으로 쌓아 올린 트룰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 방식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아름다운 건축물과 조각들은 서구 문명의 기초를 다진 고대 그리스인들의 예술적 감각을 증명합니다.

 

이 세 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각기 다른 시대, 다른 문화권에서 탄생했지만, 인간의 창의성과 기술력,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만리장성, 트룰리, 아크로폴리스의 역사와 건축적 특징, 그리고 문화적 가치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인류 문화유산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봅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된 만리장성에 대해서 우선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진시황의 통합 방어 시스템: 기원전 220년, 진시황은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기존에 존재하던 성벽들을 연결하고 확장하여 만리장성을 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국가 방어에 얼마나 큰 중요성을 두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 명나라 시대까지 이어진 축조: 만리장성의 축조는 진시황 이후에도 여러 왕조에 걸쳐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명나라 시대에는 대규모 보수 및 확장 공사가 이루어져 오늘날 우리가 보는 만리장성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 역사적·전략적 중요성: 만리장성은 단순한 벽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과거에는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는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현재는 중국의 역사와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 건축학적 가치: 만리장성은 험준한 산악 지형에 따라 건설되었으며, 그 규모와 건축 기술은 당시의 기술력을 뛰어넘는 놀라운 것입니다. 돌과 벽돌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지형에 맞게 축조되었으며, 망루, 요새 등 다양한 방어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며, 세계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만리장성: 2천년 역사를 품은 거대한 방어 시스템

중국인들에게 '만리장성'은 단순한 성벽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유럽인들이 '중국의 성벽' 또는 '대성벽'이라고 부르는 이 거대한 구조물은 2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국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살아있는 유산입니다.

만리장성의 역사:

  • 초기 방어 시설: 만리장성의 기원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각 지역의 군주들은 외부 침략과 내부 갈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을 쌓았습니다. 기원전 408년 위나라가 진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 진시황의 통합: 기원전 220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기존의 성벽들을 연결하고 확장하여 최초의 통합 방어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는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고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중요한 전략이었습니다.
  • 한나라의 확장: 한나라 무제는 만리장성을 서쪽으로 더욱 확장하여 흉노족 등의 침략에 대비했습니다. 이 시기에 만리장성은 6,000k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 명나라의 재건: 몽골족의 침입 이후, 명나라는 만리장성을 재건하고 5,650km에 이르는 새로운 성벽을 구축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만리장성의 기본적인 모습입니다.

만리장성의 특징:

  • 군사적 목적: 만리장성은 외부 침략을 막는 군사 시설이자, 중국의 문화를 보존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건축학적 걸작: 험준한 산악 지형에 따라 건설된 만리장성은 당시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줍니다. 망루, 요새, 산길, 여울 등을 전략적으로 배치하여 방어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 문화적 가치: 만리장성은 중국 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중국 문학 작품에서도 만리장성은 자주 등장하며, 백성들의 고난과 희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

만리장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역사적, 문화적,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기준 (ⅰ): 명나라 시대 만리장성은 건축학적 완벽성을 갖춘 걸작입니다.
  • 기준 (ⅱ): 춘추시대부터 이어져 온 독자적인 건설 공법과 공간 구조를 보여줍니다.
  • 기준 (ⅲ): 고대 중국 문명의 탁월한 증거입니다.
  • 기준 (ⅳ): 2,000년 동안 전략적 목적으로 유지된 군사 건축물의 특별한 사례입니다.
  • 기준 (ⅵ): 중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 중 하나입니다.

만리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유적으로, 그 웅장함과 역사적 의미는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합니다.


선사 시대의 건축 기술이 살아 숨 쉬는 곳, 트룰리

이탈리아 풀리아 남부 지역에는 '트룰리'라는 독특한 석회암 주거지가 있습니다. 트룰리는 선사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건축 기술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인접한 들판에서 석회암을 채취하여 거칠게 가공한 후, '내어쌓기' 방식으로 쌓아 올려 지붕을 만듭니다. '내어쌓기'는 돌과 돌 사이에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돌의 무게만으로 균형을 맞춰 쌓는 전통적인 건축 기법입니다. 트룰리 지붕은 피라미드, 원통, 원뿔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선조들의 놀라운 건축 기술과 예술적 감각을 보여줍니다.

알베로벨로의 트룰리: 시간 여행을 떠나는 석회암 마을

이탈리아 풀리아 주의 알베로벨로는 '트룰리'라고 불리는 독특한 석회암 주거지로 유명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알베로벨로의 트룰리는 선사 시대의 건축 기술이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트룰리는 주변 들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회암을 사용하여 지어졌습니다. 석회암은 가공이 쉽고 단열성이 뛰어나 트룰리 건축에 이상적인 재료입니다. 트룰리의 가장 큰 특징은 원뿔형, 원통형, 피라미드형 등 다양한 모양의 지붕입니다. 지붕은 '내어쌓기'라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석회암 슬라브를 쌓아 올려 만들어집니다. 놀랍게도 접착제 없이 돌의 무게만으로 벽과 지붕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알베로벨로의 트룰리는 14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거주민들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집을 쉽게 철거하고 다시 지을 수 있도록 자연석으로 벽을 둘렀다고 합니다. 16세기 중반까지 몬티 지역에 약 40여 개의 트룰리가 있었지만, 1620년 잔 지롤라모 구에르초 공작의 명령으로 트룰리가 늘어나면서 18세기 말에는 3,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습니다. 1797년에는 알베로벨로가 로열타운의 지위를 얻으면서 봉건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이때부터 트룰리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합니다.

 

트룰리의 내부는 목재로 꾸며져 있으며, 규모가 큰 트룰리에는 나무 바닥으로 된 2층이 있습니다. 지붕에는 색칠을 하지 않아 선류나 지의류가 자라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하얀 재로 신화나 종교의 상징을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트룰리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선사 시대부터 이어져 온 건축 기술과 지역 주민들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알베로벨로의 트룰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력적인 관광 명소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품은 언덕

고대 그리스의 도시 아테네에는 찬란했던 고전주의 문명을 상징하는 아크로폴리스가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스러운 공간이자, 뛰어난 건축물과 예술 작품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위대한 유적입니다. 기원전 5세기 후반,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한 아테네는 사상과 예술의 중심지로 번영했습니다. 당시 아테네의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는 아크로폴리스를 더욱 웅장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원대한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뛰어난 예술가들이 페리클레스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아크로폴리스로 모여들었습니다. 조각가 페이디아스는 탁월한 영감으로 아크로폴리스를 예술과 사상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 시기에 파르테논 신전, 에레크테이온 신전, 프로필라이온, 아테나 니케 신전 등 오늘날까지 아크로폴리스를 대표하는 걸작들이 탄생했습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서구 문명의 기둥, 역사의 파노라마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는 서구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문화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유적입니다. 단순한 건축물의 집합체를 넘어, 자연과 예술, 역사와 신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인류 문화유산의 정수입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하고 민주주의를 꽃피운 아테네는 사상과 예술의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시기에 아크로폴리스는 뛰어난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쳐 지금의 웅장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의 역사는 기원전 제2천년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왕궁과 제사 장소를 보호하기 위한 요새였지만,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는 좌절하지 않고 아크로폴리스를 재건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지도 아래 파르테논 신전, 프로필라이온, 에레크테이온 신전 등 걸작들이 탄생했고,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예술의 중심지로 다시 한번 빛을 발했습니다.

 

아크로폴리스는 오랜 세월 동안 전쟁과 침략, 자연재해 등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겪으며 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고대 그리스인들의 예술적 열정과 건축 기술은 훼손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는 서구 문명의 뿌리를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이며, 인류 역사의 위대한 증거입니다.

 

결론 마무리

지금까지 살펴본 만리장성, 트룰리, 아크로폴리스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만리장성은 중국 역사의 굴곡과 함께하며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monumental 한 건축물입니다. 트룰리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여주는 지혜로운 건축 방식의 결정체입니다. 아크로폴리스는 서구 문명의 뿌리であり,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표현하는 예술적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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